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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백야의 끝을 감상해 볼까요.

엘리스 테일러 휴갈

하워드 테일러 쓩늉

느 겨울.

엘리스가 생각보다 훨씬 길어진 회의를 마치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며칠을 꼬박 샌 탓에 다른 건 다 제쳐두고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엘리스.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하워드가 부르는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잠깐만. 나 잠부터 잘게. 5분만. 아니 10분만……. 

 

그러자 하워드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옷은 갈아입고 주무셔야죠. 

하지만 그 충고를 귀담아듣기에는 너무 피곤했다. 

침대에 몸을 누이자마자 눈앞이 핑 도는 느낌과 함께 잠이 들었다. 그것이 마지막 기억. 

 

쾅!

 

굉음에 엘리스가 소스라치며 깼다. 번쩍 눈을 뜨자마자 숨부터 들이켰다. 

급하게 들이마신 공기가 폐부까지 제대로 닿지못하고 다시 빠져나왔다.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무슨 꿈을 꿨더라? 손등으로 식은땀을 닦아내며 생각했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급히 방을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떨어지지 않았다. 

혼자만 우두커니 남은 방은 싸늘하고 어두울 뿐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창문 너머가 보였다.  흐린 밤하늘. 비가 오고 있었다. 비……. 

“ 엘리스? ”

“ 아. 깼어? 미안. ”

“ 괜찮습니다. 엘리스 때문에 깬 게 아니니까요. ”

“ 그래, 그나마 다행인가……. ”

우르릉, 쾅! 다시 굉음이 들렸다. 동시에 빗소리가 한층 더 거세졌다. 

침대께로 다가온 하워드가 불을 켤지 물어봤지만 엘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 하워드가 고개를 끄덕이고 좀 더 다가왔다. 

“ 천둥 소리였군. ” 멍하니 창밖을 보던 엘리스가 말했다. 

“ 네. 아무래도 내일까지 계속 쏟아질 것 같습니다. ” 

그래서 하워드는 괜챦냐고 묻는 대신 말을 이어갔다. 엘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 왠지 비가 올 것 같았어. ”

“ 일기예보를 확인하신 건가요.”

“ 아니. 그냥 왠지 그럴 거 같은 느낌이 들었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

“ 그렇습니까. ”

하워드도 그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내다보았다. 안개가 낀 런던의 밤거리가 흐리게 

내다보였다. 하워드의 말마따나 좀처럼 그칠것 같지 않은 비였다.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 피곤해서 그랬나봐. ”  엘리스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 잠이라도 설치셨나요? ”  

 

 

엘리스가 대답 없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몸을 숙여 반쯤쳐진 커튼을 걷어냈다. 

“ 따뜻한 차라도 준비해 드릴까요. ”

“ 으음, 아냐. 됐어. 그보다 꿈을 꿨던 것 같은데. ”

“ 꿈이요. ”

“ 응. 근데 기억이 안 나. 무슨 꿈을 꿨는지. 전혀, 하나도. ”

엘리스가 손가락으로 창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천둥소리에 깼거든. 깨면서 다 잊어버렸나 봐. ” 

하워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그런 일은 흔하니까요. ” 

 

그의 말이 맞았다. 꿈을 잊어버리는 일은 흔하다. 

톡, 톡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들어갔다.  

 

“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 ”

“ 어떤 생각이요?”

“ 지금 이 꿈처럼. 내가 뭔가를 잊어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절대로 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일을 잊어버리고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시는군요.”

“그냥 갑자기 든 생각이야.”

 

어둠은 걷힐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 겨울의 새벽이니 당연했다. 

 

“잊어버린 거면 어쩌지….”

엘리스의 중얼거림이 하얗게 창문에 맺혔다가 서서히 사라졌다. 

하워드는 잠깐 말을 고르는 듯 엘리스를 바라보았다.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뭐야. 어떻게 확신해? 나보다 네가 더 잘 아는 것 같은데.”

 

하워드의 말에 엘리스가 농담조로 대꾸했다. 

하워드의 목소리에도 가벼운 웃음기가 어렸다. 하지만 빗소리 때문인지 

아니면 천둥의 예감 때문인지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낮고 조용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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