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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책상. 


조금 낡고 먼지가 쌓여있는 이 책상은 주인이 오랜 기간 집을 비웠음을 보여준다. 


책상 위를 살펴보니, 누구에게 쓰는지 모를 접히지 않은 편지 하나가 만년필과 함께 놓여 있다.

안녕하세요. 그러니까 ... 시작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생각보다 어렵네요.

어차피 당신들에게 직접 보낼 것은 아니니 가볍게 적어볼까 합니다.

편지라고 꼭 보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요.

 

첫 만남부터 범상치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 사람들이랑 함께 있으면 꼭 피곤한 일에 얽히게 되어 피해야 하는 건 아닌지 내심 고민도 많이

했고요. 솔직히 그렇잖습니까. 한두 번도 아니고 벌써 몇 년 째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다들 내심

한 번씩은 이런 고민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국적, 나이, 직업 뭐 하나 비슷한 점 없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이상한 일에 휘말리고 해결하고 다치고... 치히로 씨의 손은 좀 나아지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카리네 씨도 그렇고, 솔직히 저를 제외하고

여러분들이 정상적인 상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기억에 조금 문제가 생겼지만 이 부분은

생활하는 데 있어 큰 문제는 없으니 넘어가도록 할까요. 어쨌든, 이제는 서로 꽤 친하게 지내는

사이인데 언제까지 이런 삶이 이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모두가 평범한 일상과는 멀어진 것

같아서요. 이게 과연 좋은 일인지 싶습니다. 

 

갑자기 계절이 바뀌거나 괴물이 튀어나오는 일에 익숙해지는 게 정상적인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실종이나 살인사건에 연루되는 것도요. 다들 자신만의 삶이 있었을 텐데 겨우 시간 내어 간 휴가에서 이리저리 쫓기며 다치는 일을 그 누가 원했을까요. 결국 모든 일이 무사히 끝났으나 조금이라도

잘못됐다면 우리 중에서도 죽은 사람이 나왔을 겁니다. 그래요. 이쯤 되니 늘 이렇게 생각합니다. 

 

' 이러다 누군가 크게 다친다면 어떡하지. '

' 다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죽는다면? '

 

당신들은 제가 누군가를 위하거나 배려 있는 모습에 익숙지 않으신 듯합니다만 누구라도 이런 일을 몇 년 동안 함께하게 된다면 결국 상대방을 걱정하고 소중히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까워졌으니까요. 아무리 관계에 거리를 둔다 한들 필연적으로 얽히게 된다면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는 겁니다. 놀라우신가요? 저도 제 스스로가 놀랍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던 날이 드물었으니까요.

한 번 발을 디딘 이상 이런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무사하길 바라는 거죠. 그럼 그 방법에는 무엇이 있냐... ...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보다 사람은 훨씬 무력하더군요. 요즘은 카리네 씨처럼 사격이라도 배워볼까 싶습니다. 아니면 호신술 같은 것도 좋겠지요. 평생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이 없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당신들의 개인적인 사정이나 제 눈 밖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개인적인 부분이니 알 필요도 없지만, 스스로가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누구나 있는 법이고 저 역시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되도록 주의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쉽지 않더군요. 

앞으로도 이어질 연이라면 무탈히 지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적당히 안부를 묻고, 여유가 된다면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모쪼록 그전까지 무사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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