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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부터 어둠이 있었다.
어둠이 갈라지고 흩어져 세상이 지금과 비슷한 모습이 되었을 때부터 완벽한 에덴 동산이라는 건 없었다.
살아 숨쉬는 게 존재하는 곳이라면 다툼은 끊이지 않았다. 선하게 시작된 존재라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둠들이 그들을 더럽히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에 ‘악의’가 존재했다.
그런 지난 날을 새로 덧입혀 존재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해준 것이 담당 서공 ¿Quaestio? 다. 가장 낮은 곳에서 지독하게 끓어오르던 금서를 수면 위로 건져내어 가장 적절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그에게 ‘악의’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느끼고 있다. 존경, 애정, 복종, 충성, 감사… 그 어떤 활자로도 이것을 나타낼 수 없을 거였다. ‘악의’는 그렇게 미지근한 온도로 그의 옆에 서서
의무를 다하게 되었다.
현재의 ‘악의’에게 있어서 남은 이야기의 절반 정도는 모두 ¿Quaestio? 에 관한 것이다.
¿Quaestio? 는 제법 지독한 성미를 갖고 있는 마법사였다.
빼어난 실력으로 멀쩡하게 다른 마법사들처럼 굴러가는 외전을 만들어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꼭 하나씩 결함으로 취급될만한 것을 하나씩 넣었다. 이게 있어야 완벽한거라고 이게 대단한거라고 한 번씩 일장연설을 토해냈지만 당연하게도 ‘악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멍한 정신에 이게 대법전의 뜻에 반하지 않았고, ¿Quaestio? 가 괜찮다고 했으니 있는 그대로의 정보만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지독하고 이해받기 어렵다고 해서 ¿Quaestio? 가 자신의 본질은 숨긴 적도 없었다.
첫만남에서는 ‘악의’가 금서일 적의 모습을 보고서도 눈을 잔뜩 빛낸 자였다. 바로 이거예요! 이것만큼은 꼭 내가 고쳐야겠어요.
그렇게 그의 손을 타 지독한 어둠이 한꺼풀씩 벗겨지기 시작했다. 발을 열심히 놀려도 나아갈 수 없는 수령마냥 깊었던 어둠은 조금씩
하얗게 바래가며 빛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본질을 온통 들어내어 바꿔내는 과정이 끔찍해서 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이것도 흐린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마치 남일처럼 느껴진다. 그런 일이 있었지. 그 때엔 그런 느낌이었는데…
그래서 그것을 곱씹어 다시 생각해본다고 화가 나거나, 슬프거나, 현재에도 고통스럽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그저 하나의 이야기이며 기록일 뿐인거다.
¿Quaestio?는 섬세했다. 자신이 믿는 길을 유려하게 그려내나가는 편이라고 어떤 서공이 그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그러니 낱장
하나하나 다 들춰가면서 전투 중에 드러나고만 악의의 변칙적인 면을 찾아내고 있는 거였다. 다른 이들은 충분히 오류나 고장이라고 말할 법한 걸 ¿Quaestio? 는 재미있는 부분이라고 콕 찝어 얘기했다. 또 다시 ‘악의’가 이해할 수 없는 정보였다.
흰 바탕을 검은 활자들이 타고 올라와 거뭇해진 부분은 수리를 받을 때마다 약간의 흔적을 남기고서 본래의 상태로 돌아갔다.
마치 자신을,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기억하라는 것처럼… 원 상태보다는 가장 보통의 상태라는 것이 더 적절한 단어일 수도 있겠다.
그가 마련해준 보통.
그가 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언제나 감사함을 표하기 위해 자신의 사명을 다하면 이 존재의 의의를 다할 수 있을테다.
그가 바라는 대로,
또 하나의 가 바라는 대로…